한 줄 요약: 낙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질문을 대신 물어봐 주고 답을 받는다.
마영신 그래픽노블 ‘엄마들’, ‘만화계 오스카’ 수상 엄청 뒷북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만화 중 하나인 마영신 작가의 '엄마들'이 만화계의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광을 얻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초기 노년기의 여성들의 삶을 마치 직접 들여다보듯이 생생하게 묘사하여,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두지 않는 인간 삶의 일면을 조명하고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려 애썼다. 작가가 어떻게 이런 내용들을 조사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사회적인 낙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줄이려면 그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기에는 불편하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장난으로 당사자가 아닌데 당사자 행세를 하면서 거짓 지식을 퍼뜨리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번거롭더라도 사이트 관리자가 당사자가 실제 그 집단의 구성원인지를 직접 확인하는 절차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0 댓글
한 줄 요약: 온라인 모임에서 다 같이 동기화된(synchronized) 행동을 하게 함으로써 모임에의 참여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온라인 모임을 주최한 적이 있었다. 온라인 모임은 아는 사람들과 해도 어색한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갑자기 이야기를 하려니 어색함이 한층 배가되는 느낌이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한 대로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대면으로 만나는 것에 비해 더 어색하고, 불편하고, 피곤하고, 더 '차가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훨씬 덜하다는 편리함도 무시할 수 없다. 앞으로 마스크를 덜 쓰게 되더라도 비대면 모임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므로, 어떻게 하면 온라인 상에서의 만남이 덜 껄끄럽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계속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그 모임에서 속으로 땀을 흘리면서 진행을 하다가 문득 생각을 한 것은, 무언가 다 같이 동기화된(synchronized) 행동을 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박자를 맞춰서 같은 동작을 취한다든지,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친다든지? 이러면 좀 웃기기도 하니까 분위기도 부드러워질 수 있고, 다 같이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너무 이상하고 엉뚱한 생각일까? 사실 그렇지 않다. 이미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이런 동기화된 행동을 하는 시간이 포함되곤 했다. 국민의례(또는 모임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는 민중의례)라는 이름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 또는 집회에서 다 같이 구호를 외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동기화된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모임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해 왔던 것이다. 이런 행동을 통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더 '연결된' 느낌을 갖게 되고(Lakens & Stel, 2011), 긍정적인 정서를 더 많이 경험하며(Paez et al., 2015), 앞으로도 그 모임에 참여하고자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Wheatley et al., 2012). 그렇다면 온라인 모임에서도 앞부분에 그런 절차를 넣으면 어떨까? 다 같이 간단한 춤을 춘다든지, 구호를 넣는다든지? 박자를 딱 맞춰야지만 다음 순서로 이어질 수 있게 한다면 참가자들이 좀 더 노력을 할 것이고, 그럼으로써 일체감도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많이 쑥스럽겠지만, 그 쑥스러움이라는 (매우 개인적인)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감을 증진시키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 모임에서는 한 번 시도를 해 봐도 좋을 것 같다. 한 줄 요약: 투표 전에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내가 투표를 한 정치인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것만큼 실망스러운 일도 별로 없다. 반대로 내가 지지하지 않은 정치인이 당선되고 나서 일을 잘 못할 때는 '그럴 줄 알았다. 이제 제대로 망하는 꼴이나 봐라.'라고 고소한 마음이 들겠지만, 그것도 결국 한 국민으로서 참 허망하기 찍이 없는 감정일 것이다. 선거 후에 모든 사람이 만족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유권자들 각자 자신이 최선을 다 해서 판단하고 선택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올바른 판단에 필요한 정확한 정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필요한 만큼만 제공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에게 나라를 맡기려면 그들을 속속들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 마치 직접 만나서 면접을 한 것처럼, 대부분의 관심 있는 국민들이 '이 정도면 아무개에 대해 알아야 할 만큼 알게 되었다'라고 느낄 만큼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이 자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에 대해서, 또는 적어도 자식의 배우자가 될 사람에 대해서 아는 만큼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기억하는 정치인들의 행동들 중에 그들에 대해 정말 잘 알게 되었다고 느꼈던 인상적인 행동들은 다음의 것들이다.
이에 반해 어떤 정치인이 무슨 가방을 들고 다닌다느니, 고개를 도리도리했다느니, 말할 때 쩝쩝 소리를 낸다느니 하는 것은 그에 비하면 그 사람의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을 말해 주는 정도가 훨씬 적은 피상적인 측면들일 것이다(모르겠다. 패션은 그 사람의 허영심이나 남들의 시선에 신경쓰는 정도를 나타내고, 고개를 도리도리하거나 쩝쩝 소리를 내면서 말하는 건 자기가 하는 말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나타낼까??? 아마 별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이런 것들보다는 훨씬 영양가 있는 측면들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미디어에서도 그런 대안적인 측면들에 더 많은 방송 시간을 할애하고, 정치 행위의 맥락 전체에서도 그런 측면들이 더 노출되도록 설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그들이 직접 쓴 글을 읽고(직접 썼음을 인증해야 함), 그들의 일상 생활을 엿보고, 질문에 답을 하게 하고, 심지어는 상황극 같은 것을 해서 어떤 상황에서 보일 반응을 관찰할 수 있다면 어떨까? 달리 말하면 선거 운동을 구태의연한 유세 같은 것으로 채우게 하지 말고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예상된다.
그러한 프로그램의 개발을 위한 2단계 과정을 생각해 보았다. 1) 정치인으로서의 수행을 잘 예측하는 개인적 특성들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MBTI 같은 것 말고 더 타당하고 설명력이 높은 도구를 이용해서 연구한다.
2) 그 특성들의 차원에서 정치인들을 평가하는 데 유용한 방법들을 개발해서 유권자들에게 그 정보를 제공하고 판단하게 한다.
덧붙여서, 정보가 주어진다고 해서 그 정보에 개인들이 적절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들을 자신의 가치 기준에 맞게 취합하여 최종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각각의 항목들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즉 얼마나 각 항목들에 가중치를 둘지) 등의 규칙을 미리 정하고 후보들이 이 동일한 기준에 따라 몇 점을 받을 수 있는지를 일괄적으로 계산해줄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적으로 멀리 있는 일들에 대해 더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되도록 선거일로부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시점에서 각 항목들의 중요성을 평정하게 한다면 지엽적인 요소들이 아닌 보다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원칙에 따라 판단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아이디어에 대하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이렇게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제공되고 그 정보가 무엇인지 투명하게 정의된다면, 정치인들은 평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하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 가식과 위선을 떨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인지적 부담이 높은 상황, 즉 갑작스럽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이나 매우 피곤한 때에도 바람직한 모습을 보일 수 있으려면 평소 마음가짐을 더 그에 맞춰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 자신의 검은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면 애초부터 검은 마음을 먹지 않으면 될 것이므로, 더 이타적이고 편견 없이 국민에 봉사하는 마음을 내면화하게 되지 않을까. 흠… 오늘도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이 난다. 한 줄 요약: 드라마 등에 소수 집단 구성원들을 더 등장시켜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에 더 친숙해지게 한다.
예전에 소수 집단 구성원들이 미디어에 더 많이, 충분히 대표되도록 만들려면 어떡해야 하나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일상 생활에서 만나보기 힘든 사람들, 또는 일상 생활에서는 아주 한정되거나 부정적인 맥락으로만 접하게 되는 사람들을 미디어를 통해서라도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면 그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잘 알게 되고 그들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는 시청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내용이 구성되므로 소수 집단 사람들을 억지로 출연시킨다는 것은 어렵고 부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해본 아이디어 중에 하나는 등장 인물들 중 일부를 소수 집단 사람으로 등장시키기 위해 마치 일종의 PPL처럼 미디어 프로그램에 금전적 지원을 하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학교 드라마의 등장 인물들 중 한둘을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거나 신체적 장애를 가진 청소년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금전적 지원은 해당 집단들의 권익 단체나 기타 그들의 복지를 촉진시키기를 원하는 주체들이 담당을 하게 된다. 심지어는 정부도 그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런 일은 공익적인 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런 일을 위해 돈이 오간다는 것에서 도덕적인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돈을 써서라도 소수 집단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사회의 통합을 위해 무엇이든 일을 하려면 돈이 들게 되므로 이것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소수 집단 사람들을 드라마 등에 등장을 시키는데 있어서 그들만의 특징이 두드러지도록 하기보다는 그들도 '우리'(다수인들)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즉 한 인물이 그 소수 집단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이야기의 중요한 장치인 것이 아니라 등장 인물들 중 한 명인데 마침 그 집단에 소속된 경우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교실의 한 학생이 다문화 가정 출신이라서 놀림을 받는다는 진부한 내용보다는 그냥 여러 학생들 중에 일부가 다문화 가정 출신으로 묘사가 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드라마에 노출되다 보면 특정 상품에 대한 친근감이 높아지듯이 특정 집단 사람들에 대해 더 친근감을 느끼고 그들과의 차이보다는 공통점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바람직한 비차별적 행동을 간접 학습하게 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좀 더 생각해 보면 이런 소수 집단에 대한 PPL은 '우리'(다수 집단 구성원들)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사실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이려는 목적이 있는 경우에 더 유용할 수 있다. 소수 집단 구성원들을 더 대표시키기 위해 드라마 등에 등장시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그들이 가진 특징이 지나치게 강조가 되면 시청자들이 기존의 편견 때문에, 또는 시청자를 가르치려 한다는 생각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치킨 PPL에서 등장 인물들이 굳이 "이 치킨 정말 맛있네!" 하면서 노골적인 광고를 하면 거부감이 느껴지듯이 말이다. 그 대신에 그들의 특징이 이야기와 전혀 관계가 없다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게 그들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스며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 어떤 소수 집단 구성원들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직 너무 모르고 있는 경우에, 또는 소수 집단 구성원들이 가지는 '우리'와의 차이들을 중요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을 때는 줄거리에 해당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할 것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자폐를 가진 사람들이 비자폐인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많은 장면을 할애해서 묘사하고 있다. 이럼으로써 자폐라는 정신적 장애에 대한 시청자들의 아직 부족한 인식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자폐와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는 문제들을 시청자들이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결론적으로, 좀 더 의도적으로라도 미디어를 통해 소수 집단과의 간접 접촉을 증진시키는 것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들이 지니는 '차이'를 얼마나 비중 있게 묘사할지는 그 차이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따라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한 줄 요약: 아직 확실하지 않고 의혹만이 있는 일에 대해 기사를 쓸 때는 그 내용에 특별한 표시를 하면 어떨까?
요즘은 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 기사들에서 어떤 수사 결과나 법률적인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진실은 뭐다라고 못을 박아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용의자'나 '피의자' 대신 '가해자'와 같은 표현을 쓰거나, 피의자가 했다고 짐작되는 행동을 마치 실체적 진실인 것처럼 묘사하곤 한다. 특히 성범죄에 관해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건 이미 갖다 버린 것 같다. 독자가 도덕적인 분노를 느끼는 만큼 재판이 끝나기 전이라도 빨리빨리 범인을 잡아 대령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느껴진다. 그나마 기사 본문에는 자세한 사정을 쓸 수 있겠지만 제목은 내용은 짧게 해야 하고 클릭수는 최대한 늘려야 하므로 이런 경향이 훨씬 심하다. 의혹 수준인 내용에 대해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표기를 하면 어떨까? 작은따옴표를 쓸 수도 있겠지만 작은따옴표는 여러 가지 다른 기능으로도 사용되므로, 잘 안 쓰는 기호를 사용하여 뭔가 새로운 표기법을 쓰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연구비 횡령} 충북대 박모 교수 검찰에 송치 이와 같이 표기하면 { } 안의 내용은 아직 명백히 밝혀진 사실이 아니라 의혹 수준이라는 뜻이므로 독자는 '아직 박모 교수를 욕할 단계는 아니구나, 좀 더 기다렸다가 욕하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면 정말 '유죄 추정'을 하는 일이 줄어들 수 있을까? 아마도 이렇게 표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기사가 실질적으로 피의자의 죄를 전제하고 쓴 것이 아니어야 이런 표기법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기자가 이미 범인을 마음 속으로 다 잡아 놓고 기사를 쓴다면 어떤 표기법을 쓰더라도 그 대상인 사람에게 굴레를 씌우는 일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한 줄 요약: 게임을 통해 탈북민들이 남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더 잘 적응할 수 있게 한다.
얼마 전에 예전에 생각했던 아이디어에 대해 쓴 적이 있었는데 한 가지 더 소개를 해 보려고 한다. 이 아이디어는 더 옛날부터 생각을 해 왔던 것으로, 탈북민들의 금융 이해력(financial literacy)을 높여주는 게임을 만들자는 것이다. 언젠가는 내가 해야지 생각했던 것이지만 언제 할지 기약도 없고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해서 여기에라도 공개를 한다. 너무 오래된 생각이라 어쩌면 누군가가 비슷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별로 말이 되지 않는 아이디어일지도 모르겠다.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도록 하려면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이 재정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일 것이다. 그러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어떻게 벌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과 능력, 즉 금융 이해력(financial literacy)을 갖추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교육과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지만 그런 교육이나 훈련은 재미도 없고, 바쁘고 여유가 없는 탈북민들에게 쓸데없고 배부른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게임으로 만들어서 탈북민들이 잠시 TV를 볼 시간이나 출퇴근 시간에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한다면,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서 즐겁게 교육과 훈련을 받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본 아이디어의 요지이다. 요즘 많이 쓰는 말로 gamification이나 serious game에 해당하는 것이 되겠다. 삶의 경제적 측면을 모사한 게임에는 모노폴리나 인생게임 류의 보드게임이 있지만 이런 게임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단순하다. 또 경쟁 일변도의 게임이라 게임을 하면서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플레이어의 기술이나 노력보다는 우연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금융 전문가와 게임 개발 전문가, 탈북민 정착 전문가, 탈북민들이 함께 참여해서 게임을 개발한다면, 탈북민들이 서로 도우며 게임을 즐기는 동시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능력, 생활 습관을 습득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을 통해 습득하게 하는 지식, 기술의 예에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기타
1) 가장 중요한 한 가지씩만의 목표를 잡는 시민 활동
옛날의 한 영화의 대사에 "난 한 놈만 팬다!"라는 게 있었는데,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 사회의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이 에너지가 여러 곳에 분산되면 충분한 동력을 얻을 수 없다. 시민 사회가 그때그때 가장 중요한 현안 딱 한 가지를 정해서 모두가 그 문제에만 매달린다면 참여자를 최대한 많이 모을 수 있고 해결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들의 수당을 일한 만큼만 받게 하는 법을 제정하도록 한다든지, 정치인들과 각 정부 기관의 장의 자녀의 입시 부정 여부를 전수 조사하도록 한다든지 하는 요구는 심각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언급되지만,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면 금방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만다. 이런 일을 하나씩 정해서 시민 사회가 해결이 될 때까지 그것에 매달린다면 시민들의 바람이 이루어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속 기간은 문제가 해결이 될 때까지 하거나, 또는 그렇게 할 경우 참여자들이 피로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일정한 기한(석 달 내로 해결을 해야 한다든지?)을 정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기한을 정해 놓는 것은 참가자들에게 긴박감을 주어서 더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의 선정은 게시판에서의 토의와 투표를 통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사안을 정하는 식으로 한다. 찬반이 심하게 갈리는 사안은 선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마치 줄다리기에서 힘을 집중하면 더 큰 힘을 모을 수 있는 것처럼 비교적 단순하고 줄기찬 요구가 필요한 문제들에 있어서는 이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 2) 시민들의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활동 위의 1)에서의 활동은 정부 등에 요구를 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겠다 또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특정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 기업과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거나 내부고발자를 따돌리지 않고 보호하겠다고 맹세를 하는 것, 과거에 어떤 잘못을 한 정치인들에게는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맹세 등이 있을 수 있다. 이것 역시 1)의 활동에서처럼 하나씩 사안을 정해서 그에 대해 시민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정하고 그 실천을 다짐하는 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 다짐은 기명 또는 무기명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정보가 제시되면 그 정보는 규범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고, 기명으로 할 경우에 특히 이 효과가 클 것이다. 참가자들의 다짐이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각각의 다짐에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책임을 지지 않는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이용하지 않겠다."라는 다짐이 있다면 그러한 경우들, 이를테면 이용자의 개인 정보를 팔아넘긴 회사나 가습기 살균제로 많은 소비자들을 죽여 놓고 책임을 회피하는 회사의 사례에 대한 뉴스가 쉽게 검색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웹사이트에서 직접적으로 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뉴스를 검색할 수 있게 한다면 복잡한 법적 문제를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활동은 시민들 자신의 행동을 변화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지만, 결국 기업이나 지배층 인사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도록 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겠다고 하면, 기업들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책임을 더 지도록 노력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