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통계 언어인 R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대세로 자리잡은 R를 싫어한다는 것은 마치 숟가락을 싫어한다고 하는 것만큼 의미가 없는 말이겠지만, 통알못, R알못으로서 평소에 느꼈던 불만들을 간단히 적어 본다.
1. 이름 일단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든다. 한국말로 이야기할 때 'R는'이라고 해야 하나? 'R은'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사소한 것부터 고민해야 하는 것이 싫다. 나는 (아마 소수설이겠지만) 'R는'이라고, 마치 받침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선호한다. 또 아무 뜻도 없이 R가 무엇인가? S 언어에서 파생되었다고 R라고 이름짓는 것은 B 언어에 기반했다고 C라고 언어의 이름을 지은 것처럼 어이가 없는 작명센스이다. 고유명사임에도 불구하고 알파벳 한 글자이니 무언가 간단한 검색을 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R 관련 검색만 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도.). 26개나 되는 알파벳 글자 중에서도 하필 통계에서 매우 많이 쓰는 R이다 보니 통계 패키지를 말하는 것인지, 상관분석, 회귀분석에서의 r/R를 말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 굳이 이름을 한 글자로 지어야겠다면 Q라든가 J라고 지었다면 어땠을까? 작명하신 분께 묻고 싶다. 2. 오픈소스 나는 오픈소스라는 철학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함이 너무나도 중요한 통계 분석과는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연구자는 개발자(코더)가 아니므로 직접 코드를 쓰기보다는 기존의 패키지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안전한 사용법이라고 생각한다. 코드를 쓰다가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차라리 에러 메시지가 나오면 다행이고, 실행은 잘 되는데 틀린 결과를 내놓는다면 나중에 수습하기 어려운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논문을 써서 출판까지 다 했는데 몇 년 뒤에 자신의 코드가 틀렸다는 걸 발견하면 어떡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발견을 못해서 잘못된 심리학 지식이 널리 퍼지게 된다면? 함께 연구를 하는 동료들이 교차 검증을 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사람이 많아지면 책임감 분산도 일어나게 마련이므로 그것도 완벽한 방지책이 될 수 없다. 어쩌면 이보다는 정도가 훨씬 덜하겠지만 사실 다른 사람이 만든 패키지도 마찬가지다. 패키지를 만드는 분들은 통계와 R 모두에 일반 연구자보다 전문 지식이 많은 도사님들일 거라고 암묵적인 가정을 한 채로 사용을 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정말 그런지 아닌지 확인하기도 어렵고 확인하게 되지도 않는다. 패키지의 개발자들은 대단하고 훌륭한 분들이긴 하지만 그 분들도 실수를 할 수 있고, 실수에 대해 어떤 책임(본인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거나 금전이나 명성에 있어서 손해를 보는)을 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패키지를 사용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패키지가 오류가 없기를 바라면서 쓸 수밖에 없다. 이는 SPSS처럼 상업적인 통계 프로그램의 경우 - 정확한 통계 분석 결과를 내놓지 않으면 제품이 실패하게 되므로 - 개발사에서 제품의 정확성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R에서 어떤 패키지를 쓸 때 개발자를 확인하면서 "이 패키지는 통계와 코딩을 둘 다 잘 하는 박말룡 교수가 만들었으니 믿고 쓸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쓰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3. 자유도 R는 자유도가 너무 높다 보니 한 가지를 하려고 해도 가능한 방법이 너무 많다. 그 방법들이 뭐가 좋은지, 정확하긴 한 건지 평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상관 분석을 한다고 할 때 내가 책이나 인터넷에서 본 방법만도 다음의 것들이 있다.
게다가 이렇게 여러 개발자들이 중구난방으로 개발을 하다 보니, 내가 잘 쓰고 있던 명령어도 언젠가는 더 좋은 명령어가 개발되면 쓸모가 없어질 수 있다. 그래서 연구자는 '내가 모르는, 훨씬 더 편리하고 기능이 충실한 명령어가 이미 개발돼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을 하게 될 수 있다. 또 여러 개발자들이 자기 맘대로 명령어의 이름을 짓다 보니, 같은 이름의 명령어가 여러 다른 패키지에서 다른 기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rcorr는 Hmisc와 ggm이라는 서로 다른 패키지에 같은 이름의 명령어가 있고, 그래서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또 이름부터 비슷비슷하면서 다르고 뒤에 파라메터들을 입력하는 형식도 제각각이다 보니 에러가 나기 쉽다. 4. 에러 메시지 에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뭘 빠트렸다거나 변수의 형식이 잘못됐다거나 할 때 문제를 콕 집어서 알아듣게 말을 해 주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나오면 R알못 연구자는 참 의욕이 꺾인다. Error in var(if (is.vector(x) || is.factor(x)) x else as.double(x), na.rm = na.rm) : Calling var(x) on a factor x is defunct. Use something like 'all(duplicated(x)[-1L])' to test for a constant vector. --> 어쩌라고? 개발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user-friendliness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지 않을까? 그분들에게 'R 사용자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 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런 건 정말 패키지를 만들 때 조금만 더 신경쓰면 쉽게 해결이 되지 않을까 싶다. 5. 사용의 어려움 말하기도 새삼스럽게 R는 쓰기가 어렵다. 그런데 요즘 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는 많은 연구자들이 나처럼 R에 거리감을 느끼는 줄 알았는데, 우리 학생들이 척척 쓰는 것을 보면 새삼 배신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야매로 배워서 그런 것이거나, 벌써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공짜이고, 무한한 확장성을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능력자들이 기꺼이 자기 시간을 할애해서 패키지를 개발하고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을 주고 있는 마당에 이런 불평을 한다는 건 배부른 태도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개발하시는 분들께서 R를 발전시킬 때 조금이라도 더 통일된 청사진을 가지고 할 수 있다면 위에 내가 쓴 문제들은 한결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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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략 일주일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보는데, 수많은 영화의 홍수 속에서 신중히 골라서 보는데도 불구하고 보는 영화에 항상 만족하지는 않는다. 외국 영화의 경우에는 위키피디아에 올라와 있는 Rotten Tomatoes와 Metacritic, 또는 IMdb 평가를 참고하고 영화를 선택하지만 점수가 몇 점이냐라는 건 사실 별로 상세한 정보가 되지 못한다. 넷플릭스와 같은 서비스에서는 지금까지의 선택을 기반으로 해서 시청자의 선호를 파악하고 영화를 추천하는데, 상세한 평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뿐더러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라고 해서 그게 훌륭한 영화라는 법도 없다. 보통 영화는 심심할 때, 영화를 보고 나서 무언가 느끼고 싶기 때문에 본다. 즉 시청자는 영화를 통해 갈구하는 어떤 정서가 있다. 그렇다면 시청자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정보는 영화를 통해 어떤 정서를 느끼도록 의도했는지와, 실제로 그 정서들이 얼마나 유발될 것으로 기대되는가가 아닐까? 어떤 영화가 호러 영화라고 해서 반드시 시청자들에게 겁을 주는 데 성공하리라는 법이 없듯이, 영화의 의도와 실제 그 의도가 성공했는지라고 하는 정보는 서로 분리해서 취급해야 할 것이다. 시청자들이 이러한 정보를 서로 교환할 수 있다면, '오늘은 어떤 영화가 당긴다' 싶을 때 자기가 필요로 하는 영화를 더 쉽게,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Let the right one in이라는 영화라면 영화가 의도하는 정서로서 신비함, 아름다움, 슬픔, 공포, 몰입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영화가 각 정서를 유발함에 있어서 얼마나 성공하는지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엽문이라는 영화를 봤다면 스릴에 몇 점, 통쾌함에 몇 점 하는 식으로 점수를 매길 수 있을 것이다. 평가에 사용하는 정서 차원은 몇 개 있어야 할까? 웬만한 영화로부터 느낄 수 있는 정서는 한정돼 있을 것인데, 그 중에는 경외심이나 호기심, 무력감 등 우리가 정서라고 잘 생각하지 않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모두 나열하면 20~30개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 정도 개수가 정서의 선택지로서 너무 많다면, 영화로부터 느낄 수 있는 정서들을 요인 분석 등을 통해 여섯 개 정도의 차원으로 단순화하여 요즘 유행하는 방사형 그래프(육각형 그래프)로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의 정보가 별점이나 해시태그처럼 지나치게 단순하지도 않고 영화평처럼 지나치게 길고 복잡하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의 정보가 아닐까 한다. 2) 잘못 고른 영화를 보고 나면 낭비한 시간에 대한 후회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건 특히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때 더 심한 것 같다. 선택지가 매우 많다는 것, 언제든지 다른 선택지로 갈아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영화를 고르고 나서도 인지부조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이것이 선택에 만족하는 것을 방해한다. 특히 혼자 볼 때는 영화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심하다. 극장이나 비디오방에서 영화를 볼 때는 일단 영화가 시작하면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다 보게 되고, 같이 보는 사람이 있으면 내 마음대로 영화 관람을 그만두기도 어려우니 그냥 애써 만족하면서 영화를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몇 가지의 영화(새로 나온 영화나 평론가가 선별한 영화 등)는 일반 방송에서처럼 정해진 시간에 방영을 해 주면 어떨까? 그냥 믿고 주어진 영화를 보는 게 오히려 마음 편한 감상을 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약간의 강제성을 띠는 게 오히려 영화에 대한 만족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3) 아이들이 있다 보니 어린 연령대의 시청자들이 보기에 부적절한 장면은 빨리 넘기거나 아예 그런 장면이 있는 작품은 시청을 포기하게 된다. 시청자 설정을 해서, 어린이들이 볼 때는 어른들을 위한 장면들은 자동으로 넘어가도록 한다면 어떨까? 장면에 대해서 (순화된 언어로) 간단히 기술해 주거나,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순화된 장면들로 대체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스트리밍 서비스는 동영상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넣어야 한다. 대학교의 비대면 동영상 강의도 N배속으로 클리어하는 세상에 1배속으로 영화를 보기에는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다! 나는 연구의 결과 보고를 엑셀로 받는 것을 선호한다. 시트를 여러 개 만들 수 있고, 오른쪽과 아래 방향으로 원하는 대로 계속 쓸 수 있으며, 가로세로 줄을 딱딱 맞추기가 편해서 많이 쓰게 되었다. 나는 원래 원노트를 쓰는 것을 더 좋아했지만 학생들의 호응이 없고 엑셀로 자꾸 보내주기에 나도 엑셀이 익숙해졌다. 그런데 R(그 놈의 R!) 등에서 텍스트로 출력된 내용을 그대로 복붙하면 전체 내용이 한 행에 들어가게 되어 편집이 어려워진다. 이것은 항목들이 공백(' ')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space delimited). 이 때 각 항목이 한 개의 셀에 들어가도록 간단히 변환하는 방법이 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서 소개한다. 예를 들어 다음은 어떤 통계 분석 결과를 그대로 엑셀에 복붙했을 때의 모습이다. 이렇게 그대로 복붙하면 한 행에 있는 모든 내용이 한 셀에 포함되게 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각 항목 사이가 공백으로 구분돼 있어서 별개의 항목으로 식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별개의 항목으로 식별되게 하려면 공백을 탭 문자로 바꿔야 한다(tab delimited). 그러려면 MS 워드를 이용해야 한다. 1) 위의 내용을 복사해서 MS 워드를 열고 이것을 붙이기한다. 2) 그 뒤에 공백을 탭 문자로 변환하는데, 그 전에 여러 개의 공백으로 이루어진 간격을 한 개의 공백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한다. ctrl+h로 바꾸기를 한다. 찾을 내용에는 공백 두 개(' ')를, 바꿀 내용에는 공백 한 개(' ')를 입력한 뒤에 모두 바꾸기(alt+a)를 한다. 그러면 두 개씩의 공백이 한 개의 공백으로 바뀐다. 모두 바꾸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더 이상 바뀔 항목이 없도록 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간격이 하나의 공백으로 입력된 표가 만들어진다. 3) 모든 공백을 탭 문자로 변환한다. 다시 워드에서 ctrl+h를 누른 뒤에, 찾을 내용에는 공백 한 개(' ')를, 바꿀 내용에는 탭의 캐럿 문자('^t')를 입력한 뒤에 모두 바꾸기(ctrl+a)를 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간격이 탭으로 입력된 표가 만들어진다. 4) 이 내용을 그대로 엑셀에 복붙하면 안 되고, 먼저 서식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은 전에 소개한 PureText를 이용하면 간단하다. 또는 메모장에 한 번 복사를 한 뒤에 워드에 다시 붙여도 된다. 엑셀에 서식을 제거한 뒤에 복붙하면 우리가 원하는 표 모양이 된다.
한 줄 요약: 정치인들에게 그들의 수행에 따라 차등적인 권한을 부여한다면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회의원이 과로사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방금도 검색을 해 보았지만 나오지 않는다.). 물론 국회의원이든 대학교수든 누구든 과로사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건 그분들이 많은 국민들의 기대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방증이 아닐까? 학생이 수업 시간에 졸거나 휴대폰을 만지면 강사가 말리기라도 하는데 국회의원은 빈둥거리는 것이 TV에 중계가 돼도 말리는 사람도 없다. 옛날 학부 다닐 때 조직심리학 수업을 들으면서 학기말 과제로 국회의원들을 평가하는 사이트를 제안하는 글을 썼던 적이 있다. 과제에서 요구된 사항이 상당히 막연해서 그냥 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적어 보았던 것이었는데, 슬프게도 지금은 파일이 남아있지 않다. 어쨌든 정치에 대해 느꼈던 답답함에 당시 매혹되었던 행동주의 심리학의 원리를 담아서 나 혼자서 재미있게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의 의정 활동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능력이 없거나 딱히 악의를 가져서, 또는 정치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그런 것들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바람직한 행동'이 조건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날 비판하고 잔소리하는 대신,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에 바라는 행동들을 식별하고 그 행동들을 할 때마다 적절하게 강화물을 준다면 그들을 진정 국민의 공복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행동이야 본회의 출석률, 법안 발의 회수 등 수치화할 수 있는 것들과 그 밖의 질적 평가가 가능한 것들 등 대개 뻔할 것이며, 이런 지표들에 의한 평가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강화물인데, 국회의원들이 목을 맬 만한 강화물이라면 당연히 다음 선거에서의 당선 여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고정 간격 강화라서 강화가 가까워질 때만 열심히 일하면 되기 때문에 평소에 열심히 하게 만들기 어렵다. 게다가 간격이 4년으로 지나치게 넓어서 게으름을 피워도 되는 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또한 그 기간 동안 의정 활동 수행이 어떠했는지를 유권자가 종합하기도 기억하기도 너무 어렵다. 이래서는 바람직한 행동의 조성이 되지 않을 것이다(실제로 안 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제안하는 강화물은 국회의원으로서 가지는 권한을 - 현재처럼 모두가 동등하게 갖는 게 아니라 - 수행에 비례해서 갖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쉽게 생각해서, 평가 지표에서 꼴찌를 한 의원이 표결에서 한 표를 던질 수 있는 것에 비해 1등을 한 의원은 예컨대 열 표를 던질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면 자기 당의 다른 의원들에 영향력이 큰 사람이 권력을 갖는 게 아니라 표결에서 더 큰 지분을 갖는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된다. 또는 회의에서 발언 시간에 차등을 준다든지, 세비를 성과급으로 준다든지 하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의원마다 권한의 크기가 다를 경우 옛날 같았으면 일일이 계산하기 복잡했겠지만 요즘은 사람이 할 필요 없이 컴퓨터에 맡기면 되는 일이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열심히 하지 않는 의원들은 망신을 당할 뿐 아니라 국회의원으로서의 권한이나 특권이 대폭 축소되어 유명무실해지므로 그에게 사용되어 낭비될 자원이 더 유용한 곳에 쓰이게 될 수 있다. 탄핵이나 국민 소환 제도를 이용하지 않아도 불량 정치인은 도태시켜 버릴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은 국회에만 적용시킬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방의회처럼 언론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정치의 장에서 활동과 권한 사이의 인과 관계가 강하게 설정되어야 비로소 정치인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정말 열심히 일할 각오가 돼 있는 사람들만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될 것이다. 강화 간격은 회기 동안으로 하거나 한 달 정도로 하면 되지 않을까? 순위가 업데이트되는 것을 보는 것은 재미가 있어서 화제성도 클 것이므로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 지금보다 높아질 것이며, 그 관심도 정치인들의 어처구니없는 권력 투쟁보다는 실질적인 의정 활동에 몰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과제를 할 때에 내 제안과 유사한 사이트가 이미 있었다. POSDAQ이라고 하는 이 사이트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정치인들에 주가와 같은 점수를 부여해서 그들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수치로 피드백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상당히 참신했는데 아쉽게도 예상만큼 큰 화제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사이트는 아직도 존재한다.). 난 잘 모르겠지만 내 아이디어처럼 직접적인 강화물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진심으로 열심히 일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주관적인 평가에 의해 점수가 부여된다면 포퓰리스트들이나 그냥 지명도가 높은 사람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될 것이므로, 평가는 객관적인 지표에 의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 줄 요약: 사회적 약자는 배려의 대상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전장연 시위에 비판적인 많은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도 '성역'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장애인들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애인들은 취약 계층이기 때문에 그들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렇게 여러 입장이 있다 보니 문제를 불편부당하게, 객관적으로 보기가 더 어려워진다. 한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사회적 주체 및 객체로서 모든 사람들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그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과 상충하게 되므로, 그들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만큼의 비판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이런 두 가지 시각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장애인들의 시위에 대해 논하는 언론 기사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관점이 충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제를 보는 법(구체적으로, '비판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비판이 허용되느냐 아니냐'에 대해)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가 없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기보다는 어떤 발언이 허용되는지 주위의 눈치를 보게 되고, 자신이 그렇게 눈치를 본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런 불만은 다시 약자들을 향하게 되어 약자에 대한 반감이 되고, 결국 언젠가 이 반감이 표면화될 때 사회 전체가 어떻게든 그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장애인(그리고 더 넓게는 사회적 약자들 모두)에 대한 두 관점을 풀어서 써 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의 입장은 이 양 극단의 사이에 위치할 것이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어느 정도'의 배려를 받고 그에 대한 댓가로 '어느 정도' 주체성을 포기하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가정할 것이다. 이에 따르면 장애인들은 연약하고 도움받는 존재로 머물러 있어야지 권력을 쥐려고 하거나 지나친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 즉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서로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관점들은 모두 장애인들을 배려의 대상인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배려를 한다는 것은 곧 그들의 주체성을 그만큼 부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위의 두 번째 관점은 장애인들의 주체성을 존중해주는 것 같지만,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의 요구를 '감내'해야 한다는 시각이라는 점에서 결국 첫 번째 관점과 공통점이 있다. 한편 다수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수인 사람들에 비해 더 '주류'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따라서 절대 다수인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위해 사용되는 돈이 자신들의 돈이 아닌 정부의 예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수인 자신들(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게 베푸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지금 이 글에도 그런 관점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경향도 '배려'라는 발상에 부채질을 할 것이다. 요컨대 내 생각에 문제의 핵심은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장애인들을 지원하는 것은 그들을 배려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공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한정된 자원을 그들에게 더 할당하는 것이라고 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는 장애를 모욕도 아니고 권리도 아닌 것으로 조금 더 바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보다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 줄 요약: 고위공직 후보를 평가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명시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이번 법무부 장관 후보에 대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지만 그의 도덕성이 계속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전에 사회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되었던 전 법무부 장관의 경우와 공통점이 많으면서도 서로 다른 점도 많다. 하필 법치 국가의 대들보가 되어야 할 법무부 장관이 될 사람들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 같고, 서로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두 사람이 모두 다른 사람에게 엄격한 잣대를 썼었는데 알고 보니 스스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들을 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문제 항목들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 국민들이나 논객들 각자가 진영 논리에 따라 누가 더 심하네 하고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즐겁지는 않지만). 법무부 장관에 요구하는 법적인 기준과 윤리적인 기준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마도 법무부 장관이 될 사람은 법에 대한 나랏일들을 관장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므로 특히 더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더 엄격한 기준'이란 무엇일까? '법을 어기지 않을 뿐 아니라 법의 범위 안에 있지만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도 삼가야 마땅하다'라고 보는 관점이 비교적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기혼자가 바람을 피웠다든가, 전관 예우를 받았다든가 하는 행동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반 시민들이 공직자에게서 바라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법률가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허용되어야 한다고, 그럼으로써 법치 국가의 이상적인 시민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인 자녀를 자기 친구인 교수의 연구실에 집어넣어서 논문의 제1저자로 만든다거나 하는 행동에 대해서, 카메라 앞에서 죄송하다고 립서비스를 할지언정 속으로는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그러한 행동이 마땅히 자신에게 허용된 법적인 권리 안에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법적인 기준만 만족하면 될까, 윤리적인 기준까지 만족해야 할까? 아마 많은 사람들은 고위공직자들일수록 윤리적인 기준까지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반면 당사자들은 '그래도 나는 법은 안 어겼잖아?'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혹은 일반인들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나 공통적으로 '나는 법적인 기준만, 남들은 윤리적인 기준까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에 있어서 이념적인 성향이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차이가 있을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기준의 현실과의 괴리 이번 경우와 같은 고위 공직 후보자 청문회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의 부와 지위를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를 일반 국민들도 그 일단이나마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런 일들에 매번 분노하고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비생산적인 일이 아닐까?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은 멋지지만 허망한 원칙이 여전히 유효할 거라고 믿으며 지도층이 엄격한 도덕적 기준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기대하고, 그 기대가 어긋날 때마다 잠깐씩 욕하다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이게 도돌이표처럼 매번 반복되는 게 한국의 현실인 것 같다. 그러느니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용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이기심을 추구할 것이다'라는, 보다 현실적인 인간상을 갖는 게 어떨까? 이렇게 믿는다면 특권층에 있는 사람들은 나머지 보통 사람들보다 당연히 더 많은 것을 누리려고 할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고, 그게 국민 정신건강에 있어서나 문제 해결의 측면에서나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결책: 사회적 합의에 의한 명백하면서도 현실적인 기준 마련? 미래의 임명직, 또는 선출직 후보에 대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을 만들면 어떨까? 지금까지 나온 사례들을 이용한다면 문제가 될 만한 항목들을 리스트로 만들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항목들이 무엇인지 판별하여 공통의 기준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후보가 얼마나 그 기준을 만족하는지 점수화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그 후보가 그 자리에 적당한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공직자들의 임명 건이 있을 때마다 사안 별로 판단하려고 하기보다는 미리 이러한 기준을 마련해 둠으로써, 정치적인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고 후보의 적격 여부를 간단하고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현실과 유리된 엄격한 기준을 사용하기보다는 과거의 사례들을 종합하여, 사회 지도층에게서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을 파악하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준을 만든다면 기준이 유명무실해지는 일(지난 정부에서처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명백한 기준이 존재한다면 공직에 나가려는 사람들이 이 기준을 더 만족하기 위해 서로 경쟁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준을 차츰 더 엄격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공직자의 청렴성이 더 높아지는 결과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 줄 요약: 집단이 사회에 요구를 할 때 수용자의 반응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계속됨에 따라 장애인 문제가 사회적으로도 많은 주목을 끌고 있다. 나는 부끄럽지만 장애인의 날이 4월 20일이라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하철 시위를 통해 유도된 관심이 전장연이 원래 목표로 했을, 장애인에 대한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여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게 된 데에는 정치인들이 시위에 대해서 '반문명적'이라느니 하는 말로 반감을 부채질한 면도 없지 않지만, 시위 자체가 취한 잘못된 방법 때문에 시민들의 부정적인 태도가 증가한 측면이 없지 않을 것 같다. 그 결과 시위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중간에 사라져버리고, 장애인 전체에 대해 거부감이 일반화되어버릴 우려가 있다. 이번 시위의 정치적인 의미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시위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인 결과를 살펴봄으로써 시위의 효과성을 평가해 보았다. 아마도 전장연에서 기대하는 것은 장애인들이 겪는 불편함이 어느 정도인지 비장애인들이 직접 목격하게 하고, 나아가 비장애인들도 그에 상응하는 정도의 불편함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공감을 유도하려는 게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 개의 경로를 통해 시위의 목적(장애인 정책 예산 증액과 같은)을 달성하려는 발상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실제 시민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와 같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몇 가지 방향을 생각해 보았다.
일반 대중의 관심을 잘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일수록 더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메시지를 수용하는 대중들의 마음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볼 필요가 있다. 한 줄 요약: 통계 보고를 할 때는 Consolas 글씨체를 써라. R를 이용해서 통계 분석을 하거나 SPSS의 PROCESS 매크로를 사용한 결과를 보고할 때에는 글씨의 폭이 일정하지 않아서 행이 삐뚤빼뚤해지고 가독성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널리 사용되는 Calibri를 사용한 표의 예는 다음과 같다. 이런 식이면 어떤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표를 읽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진다. 이 때 글씨체를 잘 고르면 훨씬 보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아래 내가 연구한 결과를 소개한다.
일단 모든 행의 줄을 맞추려면 글자의 폭이 일정해야 한다. 폭이 일정한 글씨체를 monospaced(<--> proportional)라고 한다. 현재의 GUI가 생겨나기 전의 컴퓨터에서 사용하던, '텍스트 모드'에서의 글씨체이다. '체'로 끝나는 글꼴들(굴림체, 바탕체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글씨체를 써도 특정 부분을 진하게 표시하면(예를 들어 유의한 효과들을 볼드 처리하면) 그 부분의 글씨의 폭이 더 넓어져서 마찬가지로 보기 힘들어진다. 즉 monospaced도 bold에 대해서까지 monospaced는 아닌 것이다. bold 여부에 관계 없이 폭이 일정한 글씨체(즉 서로 다른 글자들, 예를 들어 w와 i의 폭은 서로 다르지만 각각이 bold가 돼도 폭이 바뀌지 않는)도 있는데 이것들은 uniwidth, duplexed, equal-width, multiplexed라는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하지만 uniwidth이면서 monospaced인 글꼴은 매우 드물다. 프로그래밍에 쓰이는 글꼴들이 이런 것들이다. 다음 페이지에 추천하는 글꼴들이 있다. https://www.quora.com/What-are-the-best-monospace-or-fixed-width-fonts-to-use-for-programming 윈도 운영체제에 이미 설치된 것들 중에서는 Consolas(추천), Courier 등이 uniwidth이면서 monospaced인 글씨체이다. 하지만 이런 글씨체의 단점은 굵은 글씨와 굵지 않은 글씨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볼드 처리하는 효과가 적다(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도 좋은 곳은 찾기 힘들다.). 9 이상의 크기로 하면 좀 구분이 된다. 결론: Consolas를 9 이상으로 쓰는 것이 새로운 글꼴을 설치할 필요도 없고 가장 편리한 것 같다(어차피 지금까지 본 바로는 새로 설치해야 하는 글꼴 중에 이보다 더 보기 편한 것도 없다.). Consolas를 써서 위의 표를 다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보다시피 훨씬 보기가 편하다. 한 줄 요약: 사회적 규범이 생겨나거나 바뀌기를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뜯어고치자.
1) 취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제도가 필요하지만, 제도의 범위 밖에서는 사회적 규범이 인간의 행동을 규제한다. 하지만 이러한 규범은 명시적인 합의에 의해서 정해지기보다는 암묵적으로 떠오르고 확산되기 때문에 사회 변화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거나 불합리한 규범이 정착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마트 계산원들은 반드시 서서 일할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회사에서는 소비자들이 계산원들이 서서 일하는 것을 기대할 것이라고 잘못 지각하고 있기 때문에 계산원들로 하여금 서서 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럴 경우 소비자들이 계산원들이 편히 앉아서 일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킬 수 있다면 계산원들의 업무 환경 개선과 건강 증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는 이런 변화를 일으키기가 힘들다. 사람들은 사회적 규범에 동조해야 하는데 개인으로서는 그 규범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규범을 따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러 사람들이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경우에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을 꺼리거나 남들의 생각을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에(다원적 무지 현상) 변화를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할 방법이 적다. 인터넷 기술을 이용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규범이 무엇인지를 공개적인 공간에서 명시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사회를 보다 편리하고 공정하게 하는 사회 규범들을 정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 하룻밤에도 변화가 가능하다. 2) 결정 방식 규범의 결정은 다음의 여섯 단계를 거치게 된다.
3) 대상
4) 규범의 분류와 예시
5) 규범 위반 시의 사회적 제재
링크
세 줄 요약 1. 서명을 앞에 할 경우 뒤에 할 경우에 비해 더 정직하게 행동한다는 논문이 출판되어 화제가 되었다. 2. 최근의 (같은 저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결과는 재현되지 않는다. 3. 저자들 중 하나인 Dan Ariely가 자료를 수집한 원래 연구 중 하나가 자료 조작의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난 2주 동안 이 일은 뉴스 사이트, 트위터, 블로그 등지에서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태풍의 눈에 있는 Dan Ariely는 당연히 소속 학교의 조사를 받고 있고 많은 사람들의 의심의 눈초리(어쩌면 수퍼스타 학자에 대한 질시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는)를 받고 있다. 사실 자료 조작에 사용된 방법이 너무나 서툴러서 설마 그가 이렇게 뻔한 방법을 썼을까 싶기도 하지만, 과거의 그의 석연치 않은 행적들까지 이번 일로 다시 끄집어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자료 조작 이전에, 탑 저널에 실었던 연구에 대해 같은 저자들이 그 결과가 재현되지 않는다는 연구로 같은 탑 저널에 또 출판을 할 수 있었다는 걸 보면 학자들의 세상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게 이번 스캔들이 유난히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연구는 특히 정책의 맥락에서 현실적인 함의가 큰 연구였고 이미 많은 곳에서 적용이 되고 있는 중이기에, 심리학을 비롯한 행동과학의 사회적 인식이 다시 한 번 큰 타격을 받게 될 것 같다. 이번 일의 책임자가 밝혀지든 안 밝혀지든, 그 피해는 애꿎은 수많은 성실한 연구자들이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앞으로 연구 환경은 점점 더 엄격해지고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건 한편으로는 잘 된 일이고 우리 학계의 명예 회복을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꼭 이렇게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야 자정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은 씁쓸하다. 링크
100개라니 너무 많은 것 같지만 읽어보고 마음에 새겨둘 내용들이 있다. 예를 들면: 3: Take ownership/responsibility for your research 10: Find a critical friend 13: Pick narrow, deep topics 32: Snack and binge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이야기되는 지혜가 우리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걸 보면 새삼 신기하다. 그런데 저자는 논문 제목을 너무 길게 지으면 안 된다는 것은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신 것 같다... Brennan, N. M. (2019). 100 research rules of the game: How to make your research world class; how to successfully publish in top international refereed journals. Accounting, Auditing & Accountability Journal, 32(2), 691–706. https://doi.org/10/ggr9tk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장기화로 지역 사회의 자영업의 고충이 길어지고 있다. 안전을 유지하면서 자영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1. 대부분의 시민들은 어떤 업장(식당, 상점, 미용실, 놀이공원, 여행지, 노래방, 헬스클럽 등)을 이용할 수 있는지, 이용의 조건(이용 시간, 제한 인원 등)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할 것이다. 그 결과 지나치게 조심하는 태도를 취하여 불필요할 정도로 이용을 꺼리거나, 반대로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여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될 수 있다. 당연히 두 경우 모두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업종에 따라 정확히 어떤 것이 가능하고 어떤 것이 제한되는지의 정보를 간단 명료하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2. 한 공간에 너무 많은 인원이 모이지 않는다면 이용이 가능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스마트폰 앱이나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지역 사회의 여러 사업장의 현재 이용 인원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어 시민들이 조회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용자들이 적절히 분배될 수 있어 안전한 이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점심 시간에 한 지역의 여러 식당들에 현재 몇 명이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면 지나치게 한 곳에 몰리는 일을 막고 여러 식당들이 골고루 이용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3. 집합이 금지된 업종의 사업자들은 당장 수입이 막혀 있어 매우 큰 고충을 겪고 있다. 이런 이들을 위해 지역 사회의 각 사업장별로, 또는 업종별로 이용권을 미리 판매하여 코로나 사태가 끝난 뒤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업을 유지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노래방을 자주 이용하는 이용객들이 쿠폰을 스스로 구입하거나 친지들을 위해 선물할 수 있도록 하고, 다시 노래방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쿠폰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전에 썼던 글들에 대한 링크를 올려 놓는다.
Diederik Stapel의 자서전 — Apr 21, 2015 12:34:55 AM 사랑에 빠지게 하는 서른 여섯 가지 질문들 — Mar 3, 2015 1:41:36 AM 먹고 살기 힘든/쉬운 세상 — Nov 25, 2014 1:28:14 AM Nature지에 실린 심리학 연구 — Nov 25, 2014 1:24:16 AM 세계 100대 심리학자들 — Nov 25, 2014 1:19:25 AM 퇴고의 중요성! — Nov 25, 2014 1:15:54 AM p-hacking의 누명을 썼을 때의 대처법 — Nov 25, 2014 1:08:50 AM Sandra Bem과 예고된 자살 — Jul 16, 2014 12:03:12 AM Voluntouring: SNS와 선행이 낳은 괴물 — Jul 2, 2014 6:58:25 AM 지도교수와 동료들에게 배신당한 연구자의 고생담 — Jun 26, 2014 4:38:34 AM 마침내 사회심리학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나왔다! — Jun 26, 2014 4:35:52 AM 슬픈 현실: 출판된 논문들의 90%는 전혀 인용되지 않는다. — Jun 26, 2014 4:31:34 AM 예전 웹사이트에서 소개했던 도구들에 대한 링크를 올려 놓는다.
R 맛보기 — Jan 5, 2016 11:14:30 AM 암묵적 연합 검사 — Dec 9, 2015 2:39:12 AM 교육과 연구에서 Google Drive 활용법 — Apr 7, 2015 12:39:38 PM 스캐너와 FormScanner 프로그램을 이용한 시험지 OMR 채점 시스템의 구축(작업중) — Nov 17, 2014 3:21:25 PM Inquisit — Aug 12, 2014 5:55:21 AM 파일 클라우드 서비스: Dropbox — Jun 26, 2014 9:17:42 AM 이미지 편집: GIMP, Pixlr — Jun 26, 2014 4:53:26 AM 클립보드 텍스트의 서식 제거하기: PureText — Jun 26, 2014 4:50:07 AM 문헌 관리: Zotero — Jun 26, 2014 4:49:12 AM 파일 및 폴더 찾기: Everything, Listary(작업중) — Jun 26, 2014 4:48:31 AM 일정 관리: ToDoList(작업중) — Jun 26, 2014 4:46:48 AM 시간 관리: Toggl — Jun 26, 2014 4:45:08 AM 기록: Microsoft OneNote — Jun 26, 2014 4:42:46 AM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요즘은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자연히 온라인 상에서 실험을 많이 하게 되는데,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한 연구자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는 유료 설문 서비스를 사용하지 못하고 구글 설문지와 같은 무료 웹 앱을 이용하게 된다. 특히 학부생들이 실험을 할 때는 구글 설문지를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그런데 구글 설문지에는 참가자를 여러 조건에 무선 할당을 하는 기능이 없다. 그래서 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1) 참가자의 이메일 리스트가 있어서 개별적으로 연구 참가 의뢰를 할 수 있는 경우: 각 조건의 설문지를 만들어 놓고 참가자들에게는 그 중 무선적으로 선정된 조건의 링크를 보내 주면 된다. 2)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이용해서 참가자를 모집하는 경우: 이 때는 위와 같은 방법이 불가능하므로 연구를 시작하면서 참가자의 생일이 있는 달 등을 물어 보고, 그 답에 따라 조건부 분기를 하게 한다. 1)은 조건 할당에 대해 완벽한 통제가 가능하지만 많은 경우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참가를 부탁하게 되므로 이 방법을 쓸 수 없다. 2)의 방법은 무선 할당에 가까운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실험의 초반에 생일과 같은 개인 정보를 묻는 것이 부적절한 실험의 경우에는 이 방법을 쓰기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수의 방법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내 일천한 자바스크립트 지식을 동원해서 구글 설문지에서 참가자를 무선 할당하는 방법을 만들어 보았다. 이 방법은 구글 설문지와 구글 사이트 도구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웹페이지를 만든 뒤에 거기에 스크립트를 추가해서, 무선적으로 숫자를 하나 생성하고 그 숫자에 따라 서로 다른 설문이 표시되도록 하는 것이다.
행동과학(또는 행동경제학)에 대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이런 연구들을 소개하는 블로그도 많다. 대개 이런 블로그들은 이메일로 구독할 수가 있기 때문에 굳이 사이트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특히 정책과 사회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블로그들을 몇 개 소개한다.
https://chibe.upenn.edu/news/chibeblog/ https://www.behavioraleconomics.com/blog/ https://www.bi.team/our-work/blog/ https://behavioralpolicy.org/blog/ http://behavioralscientist.org/ 보통 컴퓨터 게임은 재미있자고 하는 것이지만, 요즘은 게임의 오락성보다는 상호작용의 정도, 몰입도, 자유도가 넓다는 매체 자체의 장점을 살려서 '체험' 자체를 중시하는 실험적인 게임도 많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두 가지 게임은 interactive fiction이라는 장르의 게임으로, 우울한 사람들의 심리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럼으로써 우울증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높임과 동시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1. Depression Quest (http://www.depressionquest.com/) 이 게임은 우울증을 겪는 사람의 일상을 2인칭으로 묘사하는 전형적인 Choose Your Own Adventure 방식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매사에 무기력함을 느끼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선택지들 중에 하나의 행동을 골라야 한다. 어떤 행동을 고르느냐에 따라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더 심각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게임을 하면서 우울증의 다양한 증상들에 대해 알게 되고, 아울러 우울증과 싸워나가기 위한 적절한 방법들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게임은 교육적인 측면이 강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Hana Feels (http://hanafeels.com/) 주인공은 (역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젊은 여성이다. 이 게임이 위의 Depression Quest와 다른 점은 첫째 자기 위해(self-harm) 행동이라는 구체적인 증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과, 둘째로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점이다. 이 게임은 뚜렷한 목표나 현재 상태가 표시되지 않고 모호한 상태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그래서 '게임'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대신에 플레이어는 주변 사람들의 입장에서 주인공 Hana에게 할 수 있는 얘기를 선택하고 이후 Hana의 반응을 살펴보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 접근해야 진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흔히 SPSS를 쓰지만 유료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학교 밖에서는 개인적으로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학부생들은 과제 때문에 통계를 돌릴 일이 있더라도 SPSS를 편하게 쓸 수 있는 환경에 있지 않다.
그래서 SPSS 대신에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두 개 소개하려고 한다. SPSS의 대부분의 기본적인 분석을 할 수 있으며(어차피 더 어려운 것은 할 줄도 모르고 쓸 일이 없는 게 사실이다.) 더 가볍고 사용법도 직관적이며, 무엇보다 무료이다. https://jasp-stats.org/download/ https://www.jamovi.org/download.html 두 프로그램은 외관상 매우 유사한데, 그것은 JASP를 만들던 사람들의 일부가 나와서 jamovi를 개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통계는 둘 다 할 수 있는데, 보다 높은 수준의 통계에서는 각자 할 수 있는 게 다르다. 사용법은 jamovi가 좀 더 편리하다고 하는 것 같다. 심지어 JASP는 설치할 필요없이 온라인에서도 실행할 수 있다(https://www.rollapp.com/app/jasp). 세상에는 능력자이면서 이타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thenib.com/how-pick-up-artists-morphed-into-the-alt-right?id=charis-jb&t=author%27
이 웹툰은 여성주의적이 시각에서, pickup artists(여자들을 유혹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남자들)가 alt-right groups의 태동에 영향을 미친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본문에 나온 incel이라는 말은 involuntary celibate, 즉 성관계의 의사는 있으나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을 말하는 신조어이다. 한국어의 '모쏠'과 비슷하지만 성 경험 자체에 더 초점을 맞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여혐'이라는 현상이 성적 욕구를 해소시키기 못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에서 비롯된다는 시각이다. 똑같은 해석을 남자를 싫어하는 여자들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여자든 남자든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혐오의 이유는 상대 집단과의 현실적 갈등(한정된 자원에 대한 경쟁)이지만 이러한 성적 좌절이 암묵적인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상대 성에 대한 혐오감은 상대 성별 집단 자체의 특성 때문에 생겨나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와 더불어 상대 성별 집단이 우리 성별 집단을 혐오한다는 일종의 metaprejudice도 필요 조건이 아닐까 한다. 즉 "내가 쟤들을 싫어하는 건 쟤들이 우리를 싫어하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에 의해 자신들의 편견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 밖에 한국의 상대 성별 혐오 현상의 재미있는 점은 그 대상이 대개 자국의 상대 성별 집단에 한정되고, 타국의 상대 성별 집단에 대해서는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https://www.nytimes.com/2016/10/11/opinion/for-better-citizenship-scratch-and-win.html?_r=2
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탈세를 하기 위해 영수증을 주고받는 것을 꺼리는 관행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방법은 영수증에 긁는 복권의 기능을 넣는 것이다. 복권을 긁어 보고 싶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수증을 요구할 것이고, 그 결과 국가는 세금을 더 많이 걷을 수 있다. 사실 복권은 그 비용에 비해 행동을 동기화하는 효과가 매우 큰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사용자가 자신의 당첨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일종의 판단의 오류를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복권을 이용한 동기화에 대하여 윤리적인 관점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행동의 동기화를 위해 복권이 더 널리 도입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거부감을 불식시킬 수 있는 연구들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복권과 같은 확률 게임이 불러일으킨다고 하는 이른바 '사행심'은 어떤 파급 효과가 있는가? 사람들이 이런 정책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거부감은 어떠한 심리적인 근거가 있는가? https://twitter.com/social_brains/status/836088599418281984?ref_src=twsrc%5Etfw
색채 항등성을 이용한 재미있는 착시 자극이 있어서 소개한다. https://stevemiller.net/puretext/
텍스트를 어딘가에서 복사해서 붙일 때, 원래 문서에서의 서식이 그대로 같이 복사되기 때문에 번거로울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메모장에다가 붙였다가 다시 복사하면 서식을 제거할 수 있는데, 매번 메모장을 쓰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이럴 때 쓰는 프로그램이 이 PureText이다. 이 프로그램은 클립보드에 있는 텍스트를 마치 메모장에 붙였다가 복사했을 때처럼 서식을 다 제거해 준다. ctrl+v에 가까운 단축키(Windows+v가 아주 편리하다.)로 지정을 해 놓으면 매우 쉽게 사용할 수 있다.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이거 없이 어떻게 그 동안 살았지?'라는 생각이 드는 프로그램이다. 내용과는 관계 없이, 무언가 강한 임팩트로 기억에 남을 만한 논문을 학술지에 싣는 것은 모든 연구자들(또는 학술지 편집자들)의 로망이 아닐까? 아래 링크에서 소개하는 논문은 초록이 한 단어, 즉 제목에서 묻는 질문에 답하는 "아니오."로 되어 있다.
https://gizmodo.com/study-with-one-word-abstract-finds-moon-phases-dont-pre-1822190714 내용을 좀 읽어 보면, 단순히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꼼수라고 치부하기에는 저자들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즉 일반 대중들에 퍼져 있는 잘못된 속설을 바로잡기 위해 복잡한 설명보다는 단순하고 주의를 끄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물론 논문의 본문에서는 초록에서의 답변을 뒷받침하는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다음 논문은 writer's block에 대한 심리학 논문인데, 한 술 더 떠서 아예 제목만 있고 초록도 본문도 없다. 심사평까지 합쳐서 한 쪽에 다 들어간다. 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1311997/?page=1 솔직히 이 정도 되면 그냥 마케팅 전략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논문은 61번 인용이 되었다고 한다(도대체 누가... 왜...?). 이런 논문도 저자의 업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이걸 능가하려면 제목조차도 없는 논문을 써야 할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사실 심리학은 복잡한 학문이므로 맨 위의 논문에서처럼 질문에 단답형으로 패기 있게 답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내가 본 심리학 논문들 중에 가장 박력있는 제목을 달았던 것은 다음 논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제목은 "왜 대부분의 출판된 연구 결과들은 틀렸는가?"이다. 제목이 장난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연구의 재현가능성에 관련하여 학계의 잘못된 연구 관행을 비판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논문이다. journals.plos.org/plosmedicine/article?id=10.1371/journal.pmed.0020124 나는 브라우저로 파이어폭스를 주로 쓴다(더 정확히는 Waterfox라는 fork를 사용한다.). 한국 사이트를 들어가는 데 있어서 파이어폭스는 크롬보다도 더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어폭스를 쓰는 것은 다양한 추가 기능 때문이다. 예를 들어 크롬에서는 유튜브 동영상을 내려받는 추가 기능을 쓸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파이어폭스에서는 가능하다.
논문을 찾을 때는 학교 도서관으로 들어가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이것조차도 파이어폭스에서는 잘 안 된다.) 구글 학술검색을 주로 쓴다. 웹의 어딘가에 논문이 공개적으로 올려져 있다면 굳이 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진짜 게을러지면 구글 학술검색으로 들어가서 찾는 것조차 귀찮아진다. 그럴 때 유용한 것이 이 Google Scholar Button이다. 이걸 쓰면 화면에 나와 있는 논문 제목(논문을 특정할 수 없을 때는 마우스로 선택이 된 문자열)을 구글 학술검색에서 찾아서 그 결과를 작은 창에 보여 준다(아래 그림의 빨간 상자 부분). 특히 다운로드할 수 있는 논문이 있는 경우에는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클릭하면 바로 내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다. 매일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어디엔가 적어 놓지 않으면 중요한 일을 잊게 된다. 그래서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할 일을 적는 목록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목록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은데(Todoist나 Wunderlist, Any.do 같은 것들이 유명하다.) 내가 사용하는 것은 ToDoList라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아는 사람만 아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요즘의 추세와는 달리 웹 앱이 아니라 컴퓨터에 설치하는 앱이다. https://abstractspoon.weebly.com/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은 한 화면에 할 일들을 쫙 펼쳐놓을 수 있고, 과제의 위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아래 그림 참고). 그리고 모든 기능을 키보드로 조작할 수 있으며, 옵션이 아주 많아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커스터마이징을 하는 것이 쉽다. 그리고 모든 할 일들에 대해 메모를 적을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의 단점은 첫째, 컴퓨터에 파일이 저장되는 것이므로 여러 컴퓨터를 쓰는 사람은 파일의 저장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드랍박스 같은 걸 쓰면 파일을 그 폴더에 저장하기만 하면 되지만, 컴퓨터를 끄기 전에 파일을 닫고 싱크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둘째, 컴퓨터용 앱으로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스마트폰 등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컴퓨터가 없는 곳에서 해야 할 일도 있으므로 이것은 큰 단점이다. 그래서 나는 외출을 할 때는 Google Keep에 할 일을 복사해 둔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항상 컴퓨터에 띄워 놓는다. 일을 하나 하나 끝내면서 화면에서 지워 나갈 때의 손맛이 있다. To do list를 쓰는 것의 단점 중 하나가 큰 그림을 보기보다는 자잘한 일들을 달성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이 리스트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린 일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