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요약: 태도는 혼자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오늘도 다양한 사회 집단들은 거리에서, 또는 온라인 상에서 자신들의 정치적인 주장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가운데 가끔 난감한 일이 생기는 것은, 사실은 그 정치적인 주장이 누군가 사악한 의도를 가진 세력에 의해서 선동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경우이다. 그 '누군가'는 대개 북한이지만, 때로는 중국 정부가 배후로 지목이 되기도 한다(예: 한국의 양성 간 갈등 조장). “세월호처럼 분노 분출시켜라” 北, 핼러윈 뒤 민노총에 지령 태영호 "北서 배웠다, 4·3은 김일성이…"→ 진중권 "3·1운동도 그리 말할 테냐" ('지령'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뉴스에서 보는 것은 참 오랜만이라는 느낌이다. 이 말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누군가가 음모를 꾸며서 자신의 부하에게 비밀스러운 지시를 내리면, 어리석고 순진한 사람들이 이에 의해 수동적으로 조종당하는 것 같은 뉘앙스가 담겨 있다.) 특히 그 주장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일수록 충격이 더 큰 것 같다. 이렇게 어떤 정치적인 주장이 사실은 누군가 외부인의 조종을 당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게 되면, 그 주장을 하는 집단의 도덕적 정당성은 크게 타격을 입게 된다. 그 결과 그들은 마치 장기판의 말처럼, 또는 스스로의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선동에 의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좀비처럼 지각되기도 한다. 특히 집단의 실체성(entitativity)이 높게 지각되는 집단일수록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전부 다 누군가에게 속아서 조종당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인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당연히 그 당사자들이나 그들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이런 선동 주장에 대해 방어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4.3 사건에 관한 태영호 의원의 주장에 대해 진중권씨나 류호정 의원이 보인 반응처럼 말이다. 정치적 운동 뒤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주장 때문에 그 정치적 운동의 주체들이 폄하되는 이러한 현상은 일종의 절감의 원리(discounting principle)의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다. 즉 그들이 그런 태도를 가진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내적인 원인(자신의 가치관, 신념 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외적인 원인(선동, 조작) 또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면 내적인 원인이 가지는 설명력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외적인 원인에 의한 설명은 그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부정하는 함의를 가지고 있으므로, 상대편 진영의 사람에게는 좋은 공격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 다양한 현안들에 대해 태도를 가지고 있고, 그런 태도를 각자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중요한 소유물 또는 그 사람의 창조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진공 상태에서 스스로 태도를 형성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들은 모두 크든 작든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태도가 얼마나 '나의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 태도가 '나'를 정의함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질까? 우리 자신이든 다른 사람들이든, 누군가가 가지는 태도가 남들에 의해 쉽게 영향받을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면, 그 태도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즉 스스로 형성한 것인지 남들에 의해서 주입된 것인지)에 지나치게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 신념을 가진 분들에 대해 사람들이 지각하는 의지와 주체성의 훼손 없이 그 분들의 태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예를 들어 정말로 북한이 핼러윈 참사 이후에 소요를 일으키라고 지령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그 자체로서 평가해야지 무조건 북한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매도하고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길로 가기를 바라면서 외치는 여러 목소리들 중 하나-어쩌면 올바른 목소리일 수 있는-에 귀를 닫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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